드림

마지막 [청명우연]

랄릴루 2022. 3. 28. 16:41

노을보다 붉은 혈들이 이 세상을 뒤덮었던 때를 기억한다.
시체는 눈을 두는 곳 어디에나 산처럼 쌓여있었고, 시체들에게서 흘러나온 피는 강처럼 흘러 땅을 적셨다.
그런 광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죽음 뒤의 나락이 따로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죽음이 다가온다.
피할 수도 없을 만큼 아주 가까운 지척에서, 온몸을 집어삼키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눈을 감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나락이 펼쳐져 그곳으로 끝없이 떨어질 것만 같다.
이 전쟁에 참여한 모두가 죽고, 결국에는 천마가 죽어도, 나는 살아남지 못하겠지.
그걸 깨달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너였다.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도,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눈을 감아도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너를.
너를 떠올렸다.
네가, 우리가 지킨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주길 바란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미 죽어버렸을지 모르는 네게 너무 늦은 말인지는 몰라도.
나를 잊어서라도 네가 행복하길 바랐다.
천마 따위 없는 이 세상에서 더는 바랄 것 없을 만큼 행복하길 바랐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그저, 너의 행복만을 바랐다.
세상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좋았으니.
나는 그저 우리가 함께한 화산에서, 화산의 모두와, 너와.
만개한 매화 사이에서 아주 오랜 시간 함께 하는 것을 꿈꿀 뿐이다.
붉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핏빛으로 물들어 너무도 붉었다.
언제고 매화는 지기 마련임에도, 크나큰 절망만이 느껴진다.
화산이여. 이제는 닿지 못할 이름을 불렀다.
매화검존이라 불리었던, 청명의 쓸쓸했던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