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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상상 [청명우연]

청명아.
다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날 부르던 너는 언제나 햇살에 반짝여 눈이 부셨다.
나는 처마 밑에 앉아 눈을 감고 벽에 기대었다가, 네 목소리가 들리면 눈을 떠 네가 내 시선을 꽉 채우는 그 순간을 사랑했다.
너를 이루는 그 모든 것을 좋아했다.
사소한 일상 속 작은 버릇들이 그리도 사랑스러웠다.
따스한 햇살 아래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노래를 불러주던 너를 그 무엇보다 가애했다.
그러했음에 그때의 네가 지금도 불쑥 튀어나오는 일은 그리 특이하지 않은 일일 터다.
지붕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가, 너의 목소리에 눈을 뜨면.
내 두 눈이 푸르른색으로 가득 차며 나는 순간 과거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가.
금세 이 모든 것이 그저 지나간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만다.
정말로 행복하고, 아름답고, 그렇기에 더욱더 잔인한 추억. 괴로운 사랑.
너는 이제 그 어디에도 없는데, 왜 나는 여기에 남아 과거만을 몇 번이고 곱씹고 있는 건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 머리를 쓰담아주던 네 손길은, 네가 눈을 감은 나무 바닥에서야 겨우, 아주 차갑고 거친 흔적만을 찾을 뿐이다.
네가 사라졌을 때 한 번, 다시 이 삶을 시작한 후에 모든 진상을 알고서 또 한 번.
생사를 알 수 없던 그때보다 확실한 너의 죽음이 드러난 지금, 너를 두 번이나 잃고서 보다 한층 괴롭다.
누구 하나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 열심히 노력하던 너는, 눈을 뜨고서 너를 제외한 모두의 부고를 듣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도, 장문 사형도, 청문도, 그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화산이 세상의 배신 속 무너져가는 사이 그리도 노력하다 결국 우리 모두를 죽이고 앗아간 마교의 손에, 화산이 불태워지는 그 가운데에서 숨이 다해가던 너는, 도대체 얼마나 큰 절망을 맞이했을까.
눈물이 흘렀다. 차마 어떠한 소리도, 표정의 변화도 나타낼 수 없는 눈물이.
너 혼자 짊어졌어야 하는 부담감, 화산이 무너져간다는 절망감, 모두의 죽음에 차마 미련없이 슬퍼하지 못했을 너의 고회를, 나는 감히 상상치도 못하겠다.
우연아.
언제까지고 다정히 빛났어야 할, 따듯한 선의로 가득 피어있던 너는, 시간의 흐름에 서서히 바래갔어야 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계속해서 '그랬을' 너만을 떠올리며 그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뿐이다.
주검조차 남기지 못하고 아마도 여전히 모두를 생각하며 숨을 거뒀을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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