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잘나 엘리트 코스만을 밟으며 곱게 자란 야가미 라이토는 10여 년의 짧은 인생을 살며 사랑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잘남을 톡톡히 알고 있었으며,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에 사랑에 빠질 수 없었으니까.
그러던 2004년의 봄, 토오 대학의 입학식 날.
푸른 하늘은 유난히 드넓고 옅은 분홍빛의 벚꽃이 환하게 피어나 자신을 따라다니는 검은 것의 흉측함을 조금이나마 감춰주던 그날.
처음으로 L을 만난 그날에,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짧은 검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흐트러지고, 짙은 고동색의 눈동자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한 오만함을 드러내며 흩날리는 벚꽃에 아주 사랑스럽게도 어우러지는 것을 보고, 라이토는 한시 바쁘게 떠오르는 생각을 단번에 지워버린 채 사랑에 빠져버렸다.
눈꼬리를 곱게 휘며 발랄하게 뛰어오던 그 여자는, 제가 아니라 L의 품에 안겨버렸지만.
베시, 라 소개받은 그 여자는 처음 만난 저를 보고 웃으며 친구라 불렀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곧바로 시선을 돌려 엘에게 사랑을 듣고 사랑을 답했다.
그 끔찍하게도 행복하고, 황홀스럽게도 참담한 그날 이후로 라이토는 때때로 베시를 생각했다.
부드러울 것 같은 그의 머릿결이나 발랄하던 목소리, 그를 단번에 빠져들게 만든 그 오만한 눈빛을 생각하면 신세계 따위는 아무렇게든 되어버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는 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지루한 강의를 듣고서, 남는 시간에 류자키와 이야기를 나누다, 곧이어 저 멀리서 베시가 다가와 류자키와 저의 이름을 부르고서 류자키에게 입을 맞출 때면 라이토는 L을 없애버리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하게 들다가도, 그의 일부라도 가지고 싶은 부러움만이 남았다.
찾아보면 그다지 드물지도 않은 얼굴, 목소리, 성격임에도 어느새 제 곁에서 저의 이름만을 부르고 제 귀에 사랑을 속삭일 그만을 그리고 있다.
그에게는 종잡을 수 없을 부분이 있으니 그 부분이 나를 붙잡아 이렇게 만드나 보지...
라이토는 그저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제 손 사이사이를 흘러내리는 상상을 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야가미 라이토는 오만했다.
흔히 말하는 천재에, 뛰어난 용모를 가졌고, 모두가 그를 따르니 당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사랑 앞에서도 유지하기가 싶던가.
라이토는 베시를 만날 때면 그저 잠깐은 오만을 내려놓고 그에게 밀회를 속삭이고 싶었다.
잘난 얼굴을 좋아한다 들었으니 적어도 제 얼굴만은 마음에 들지 않겠는가.
데스노트를 주움으로 성실하고 정의로운 야가미 라이토가 죽었다면, 베시를 사랑함으로써 오만한 야가미 라이토는 모습을 감췄다.
신세계의 신을 꿈꾸는 라이토도 결국은 사랑 앞에 무릎 꿇는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라이토는 단언컨대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가진 저울을 누군가에게로 기울이고 싶어졌다.
저울 한쪽에 그를 올리고, 반대편에 그 무엇을 올리든 그가 이길 수 있도록.
라이토는 제 정의에, 베시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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