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네?"
엘은 애플파이를 한 입 먹으려다 말고 베시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베시는 평소와 같이 해맑게 웃고 있었고 엘도 평소와 같은 투로 대답했다.
"이제, 엘을 그만 좋아해 보려고."
"네?"
그리고 나온 말은 뜬금없는 것이었다.
베시는 언제나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고 함께 느껴지는 그 자신감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던지라 더 뜬금없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 엘은 별 상관없는 거면서."
베시는 또 그렇게 말했다.
놀라운 말을 아무런 상관없는 얼굴과 말투로 그렇게.
오늘 날씨가 좋네.라고 말하는 듯이.
"왜..죠?"
엘은 말을 꺼내다가 자신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되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엘 자신은 베시의 마음에 답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했기 때문이다.
"글쎄. 지쳐서?"
베시는 살짝 웃었다.
다소 후련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의외네요. 지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요."
엘은 평소의 평정심을 되찾고 애플파이를 한 입 떠먹었다. 사과잼이 평소보다 더 달게 느껴졌다.
"엘, 지치지 않는 사람은 없어."
쓸쓸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 말이 엘의 평정심을 다시 흐트러 놓았다.
그동안 같이 시간을 보냈던, 자신이 알던 베시에게서 나올 말이 아니어서 엘은 고개를 들어 베시를 보았다.
베시는 곧 울 것 같은 걸 참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엘을 보고 있었다.
아.
엘의 마음 한구석이 울렁였다.
베시의 말마따나 지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식사를 하고 숙면과 휴식을 취해야 했다.
사랑을 한다면 사랑을 받아야 했다.
자신도 그것을 잘 알았건만 누구보다 밝고 활기차고 솔직한 사람이라, 그럴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베시를 친구로 여기기 시작했는데도 자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마음이 파도가 이는 것같이 울렁였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엘은 그 울렁임을 억누르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새삼 냉정한 말이었다.
이런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는데도, 아니 누구보다 잘 알고있어서 더욱 그랬다.
"정말 변함이 없네, 엘은."
그래서 베시는 그저 그렇게 답했다.
"그렇습니까. 저는 나름 변했다고 생각했는데요."
엘은 어느새 자신의 앞에 온 베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늘은 아직 예쁜 푸른색이었고 열어놓은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살짝 불어왔다.
바람이 베시의 앞머리를 스치고 엘의 시선은 베시의 눈으로 향했다.
베시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자신과는 반대되는 눈이라 좋아하는 눈이었다.
베시는 팔을 뻗어 엘의 얼굴을 감쌌고 엘은 그 손길에 따라 얼굴을 들었다.
가까이에서 본 베시는 정말, 간신히 울음을 참는 듯이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이내 베시는 허리를 숙였다.
첫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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